가장 기억나는 보호자의 선물
레지던트 3년차 때였다. 당시 나는 소아흉부외과 중환자실을 지키는 임무를 맡고 있었다.
심장수술에는 큰 두 가지 고비가 있다. 수술장에서의 시간과 수술 직후 중환자실에서 보내는 시간이다. 이 두 시기를 무사히 넘기면 다소 안도의 한숨을 쉴 수 있게 된다.
심장 수술을 받은 직후의 아이들 상태를 나는 종종 외줄타기로 표현한다. 이 쪽으로 조금만 쏠려도 떨어지고야 말고 저쪽으로 조금만 쏠려도 떨어지고야 마는 외줄타기… 나의 역할은 아이들이 균형을 잃고 넘어지지 않도록 지탱해주는 막대 역할을 하는 것이었다.
말하자면, 수술하시는 교수님 만큼이나 중요한 임무를 맡고 있었던 거다.
아이들의 회복력은 대단해서 아무리 힘든 고비일 지라도 그 고비를 넘기고 나면 놀라운 정도로 회복하여 정상 아이들과 전혀 다를 바 없이 회복되기도 한다. 나에게는 한 순간이 이 아이의 평생을 좌우할 수 있는 순간에 놓여 있기 때문에 더욱 정신을 바짝 차리고 긴장해야만 했다.
사소한 실수도 용납 못해서 주변사람들에게 소리지르고 난리치기도 하며, 어떤 방법도 없는 좋지 않은 아이를 보고는 회의감이 들기도 하고, 밤새도록 논문과 전공서적을 뒤적이며 최선을 다한 환자가 좋아지고 나면 즐거워 날뛰기도 하며 24시간 중환자실 안에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당시 나는 보호자 면회 시간마다 돌아다니며 환아 상태를 간략히 설명하곤 했다. 상태가 나쁜 환아 앞에서는 고개를 푹 숙이거나 진지한 표정으로 설명하고, 상태가 좋아진 환아 앞에서는 나도 모르게 어깨가 으쓱해지며 걱정마세요 좋아졌어요 라고 안심시켜 주곤 했다.
정확히 어떤 병을 가진 어떤 아이였는지는 기억나질 않지만 수술 직후 아이의 상태가 좋지는 않았었고, 나름대로 신경쓰고 노력해서 상태가 호전된 환아가 있었다.
그 아이의 보호자에게
'이젠 걱정안하셔도 되겠습니다. 병동으로 가세요.' 라고 하자
'선생님 그간 신경 써 주셔서 너무 고맙습니다.'하더니
'아~ 잠깐만 계세요.'라고 하며 밖에 뛰어 나가시는 것이었다.
'혹시 뭘 주시려고 준비하셨나,'하며 사실 약간은 기대감도 있었고, 궁금하기도 했었다.
그런데 조금 있다 다시 온 보호자의 손에는 막 자판기에서 뽑은 시원한 음료수 캔을 들고 나에게 내밀었다.
'선생님 목이 되게 말라 보이셔서요.'
하시더니 다시금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는 나가셨다.
여러 가지 감정과 생각이 뒤통수를 때렸다. '애걔, 겨우 캔 음료수 하나?'라는 실망감 더하기 무언가 물질적인 것을 조금이나마 기대했었던 스스로에 대한 부끄러움 더하기 마음이 담긴 선물에 대한 가슴속에서 느껴지는 훈훈함 더하기 사람 살리는, 보호자로부터 가슴으로 우러나오는 감사를 받을 수 있게 된 흉부외과 의사로서의 자신에 대한 뿌듯함 등등….
마음이 담긴 음료수 캔 하나로 인해 의사로서의 나 자신을 다시금 돌이켜보고 반성하게 되었다.
월간 <당신이 축복입니다> 2008. 6월호에 게제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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